건강상식

우리 몸은 혈압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혈압약과 싸운다

自由人 2017. 6. 12. 13:26


우리 몸은 혈압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혈압약과 싸운다

항상 健康하시고 幸福하세요!

 

 

우리 몸은 혈압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혈압약과 싸운다

 

혈압 잴 때 약간은 흥분된다.

이유는 겁을 먹기 때문이다. 높게 나오면 어쩌지?

안그렇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자기도 모르는 새 약간의 흥분상태에 있게 될 것이다.

혈압기계가 흥분시키는 것이다.

당연히 평소보다 높게 나올 것이다.

좀 쉬었다 재라고 하지만 그래도 조금은 흥분상태에 있을 것이다.

매일 재던 혈압계를 치워버렸다.

뜀박질할 때 혈압 엄청나게 올라갈텐데 뜀박질했다고 죽지는 않찮은가.

혈압이 문제가 아니라 혈관건강이 문제이고

혈관건강을 좋게 하려면 세포가 건강해야 한다.

세포를 건강하게 하려면 순환이 잘 되어야 하는데

약으로 혈압을 낮추게 되면

세포로 가야할 혈액이 적어지므로 세포는 허약해질 것이다.

아랫글 초입에

- 우리 몸은 혈압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혈압약과 싸운다.- 이렇게 쓰여있다.

무릎이 탁쳐진다.

약이 몸에 들어오니 이물질 아닌가.

우리몸은 약을 해독하느라 고생을 하게 될 것이다.

게다가 혈압약 때문에 피가 닿지 않아 굶는 세포가 생기게 될 것이다.

그런 약을 평생 먹어야 한다면 이건 약이 아니라 밥이 된다.

매일매일 먹는 것은 밥이고 아플 때만 먹는 것이 약인데

평생 매일 먹는다면 그것은 밥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밥은 왜 매일 먹나 그것은 매일 먹어도 되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약이 음식이라 할 수는 없지 않는가.

더구나 굶는 세포가 생긴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아마도 치매는 고혈압약 부작용일 것이다.

***혈압을 낮추려면 몸무게를 배꼽아래로 내리면 된다.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혈압이 내려간다.

세포를 허약하게 하는 것은 각종 인공화학물질이다.

병원약도 인공화학물질이다.

먹지 말아야할 것이 병원 약이다.

현대의 각종 질병은 약의 부작용이 거의 다라고 할 수 있다.

혈압을 재는 기계는 그냥 기계에 불과하다

[박창희 칼럼]

 

 

[미디어파인=박창희의 건강한 삶을 위해]

우리 몸은 혈압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혈압약과 싸운다.

약으로 혈압을 낮추면 어떤 형태든 혈액 순환은 방해를 받는다.

인체는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 혈관을 수축시키거나

심장의 박출량을 늘려 혈압을 올리는 조처를 한다.

약발이 다하면 혈압은 기다렸다는 듯 다시 상승하게 된다.

상승하면 또 먹게 되니

우리 몸은 호시탐탐 떨어진 혈압을 올리기 위한 기회만 엿보게 된다.

혈압약을 먹는 한 이 악순환을 끊을 길이 없다.

그래서 혈압약은 평생 먹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낫지도 않고 평생 먹어야 한다면 그게 어디 약인가.

설령 약으로 혈압 수치를 낮추어 수치가 정상으로 보인다 할지라도

혈액 순환은 명백히 방해받고 있는 셈이다.

조절하면 할수록 우리 몸은 반발하고 튀어오르며 혈압을 높이려 할 것이다.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코미디 같은 이 약을 먹는 연령도 낮아져

멀쩡한 젊은이들도 고혈압 환자의 반열에 들어서고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약을 매일 챙기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길을 떠난 후 약 때문에 돌아가는 일도 생긴다.

약만 챙기는 게 아니라 수시로 혈압을 재기도 하는데

아예 기계를 들여놓고 혈압을 측정하는 이들도 있다.

잠 깨서 재고, 밥 먹고 재고, 동네 한 바퀴 돌고 또 잰다.

변화무쌍한 수치를 수첩에 꼬박꼬박 기록하는 모습이 영락없는 혈압의 노예다.

혈압에 의한, 혈압을 위한, 혈압의 인생으로 전락하여 사는 것이다.

 

 

길을 걷다 사나운 개와 맞닥뜨리면 독자께서는 어떻게 하시겠는가.

일단 줄행랑을 놓기 시작하면 혈압은 200 이상 치솟는다.

혈압이 오를까 두렵다면 개에게 다리를 내주어야 한다.

선 보러 나간 노총각 앞에 절세의 미인이 앉았다면 총각 역시 혈압이 상승할 것이다.

남녀가 뜨거운 사랑을 나누어도 혈압은 올라간다.

혈관에 가해지는 압력이 두려워 도중에 사랑을 멈추고 항고혈압약이라도 먹어야 하나.

연간 천 번 넘게 수능 성적 확인 하듯 수치를 확인하고 마음을 졸이면

그 스트레스에 지쳐 죽을 일이다.

그렇다면 대체 피의 압력을 재는 이 기계는 어떤 원리로 만들어진 것일까.

지난 호에 언급한 혈압의 단위인 mmHg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인류 최초로 혈압계를 만든 사람은 러시아 군의관 니콜라이 코르트코프인데

이 자의 이름을 따 혈압 측정법을 코르트코프법이라 하기도 한다.

 Hg는 Hydragyrum, 즉 수은의 약칭이며,

수축기 혈압이 160mm, 이완기 혈압이 120mm이라면

그것은 말 그대로 각각 16cm, 12cm를 의미한다.

심장이 뿜어 올리는 피의 세기가 수은주(수은 기둥)를 16cm 밀어 올렸단 얘기다.

 

 

수은(水銀)은 상온에서 액체를 유지하는 유일한 금속으로,

물의 13배나 되는 비중을 가지고 있다.

생선에 축적된 수은이 인체의 신경계에 치명적 영향이 있다 하여 꺼리기도 하는 데

과거엔 체한 음식을 내려가게 하거나 매독의 치료 목적으로 마시기도 했다.

음식을 내려보낼 정도로 비중이 큰 수은을 혈압계에 적용한 이유는 간단하다.

비중이 물의 13배라 했으니 수은을 16cm 올린다면

물은 2m 가까이 뿜어 올릴 힘이란 의미다.

만약 맹물로 혈압계를 만든다면 높이가 2~3m나 되는 거대한 구조물이 될 것이다.

지구를 3바퀴나 돌 수 있는 12만km의 혈관을

시속 216km의 속도로 총알처럼 내 달리는 혈액은

그 기세가 참으로 대단하다 못해 경이롭다.

인간이 이와 같은 기계를 만들었다면

크기도 크려니와 작동 시 소음 때문에 귀가 먹을 테지만

우리 몸은 자신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부드럽고 유연하게 맡은 일을 수행한다.

우리 몸의 생리적 작용은 항상성 유지라는 절체절명의 사명을 위해

정교한 톱니처럼 정확히 돌아간다.

필요 때문에 때론 천천히,

때론 거칠게 달리는 혈액의 속도를

우리가 약을 쏟아부어 브레이크를 거는 행위는 과연 최선일까.

필자를 포함한 많은 이들의 고민이 비롯된

고혈압과 그것의 서막을 알린 혈압계에 대해 다음 호에 좀 더 알아보자.
박창희 교수 .

<저작권자 © 미디어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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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압이 높아진 당신은 축복받은 사람이다

박창희 교수

 

 

[미디어파인=박창희의 건강한 삶을 위해]

나이에 걸맞는 속도로 적당히 높아지는 혈압을

필자는 질병이 아니라 가령(加齡) 현상으로 본다.

흰머리가 늘고 피부가 늘어져 주름이 지듯,

보이지 않는 우리 몸속 생체 구조 역시 세월의 흐름에 따라 쇠퇴해 간다.

계단을 두 칸씩 오르거나,

소화 기능이 떨어져 젊을 때처럼 많이 못 먹는 것을 질병으로 볼 수 없듯 말이다.

혈관을 예로 들어보자.

온몸에 피를 보내는 가느다란 파이프인 혈관은 모세혈관까지 모두 더하여 12만km다.

수도 파이프가 녹슬듯 엄청난 길이의 혈관도 노화의 과정을 거치면

외벽이 두꺼워지거나 콜레스테롤

또는 중성지방 등의 슬러지가 내벽에 침착되어 통로가 좁아지게 된다.

피의 흐름, 즉 혈행이 나빠지므로 혈관 내부 압력인 혈압이 올라감은 당연하다.

그렇다면 우리 몸은 왜 혈압을 올리는 것일까.

손이나 발의 끝 부위,

성기 등 말초신경이 많이 분포한 몸의 말단으로 혈액을 원활히 공급하기 위함이다.

지극히 정상적인 행위이므로 혈압이 올라간다는 것은

한편으론 축복 받을 일 아니겠는가.

우리 몸의 자연스러운 생존 능력인 항상성을 맞서 싸워야 할

질병으로 간주하는 잘못된 사고는 하루빨리 바뀌어야 한다.

단순히 혈압이 높아지는 것을 현대 의학에서 병으로 본다면

그것은 늙어가는 모든 이를 고혈압 환자로 만드는 행위다.

 

 

대한민국의 혈압약 시장 규모가 대략 1조5,000억이다.

뚜렷한 증상도 없다 하여 고혈압을 흔히 침묵의 살인자라 일컫는다.

건강한 대다수 사람이 실체도 분명하지 않은

조장된 공포 앞에 평생 약을 먹고 스트레스를 받으며 사는 것은 아닐까.

모든 사람의 체질이 다르듯

정상 혈압의 범위를 획일적으로 정하는 것도 이치에 맞지 않는다.

단순한 증상을 질환으로 보거나,

병의 범위를 확장해 의사의 역할을 늘리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여성의 마음이 며칠 심란하면 증후군이요,

 어린이가 좀 부산한 것을 가지고 과잉행동장애 어쩌고 하며 정신과 약을 먹이는 현실이다.

단순히 속이 좀 쓰릴 뿐인데 막을 형성해 위벽을 보호해 준다는 약을 냉큼 먹는다.

사실 위벽에 막이 생기면 큰일 아닌가.

제약회사 역시 대중이 먹을 수 있는 약을 만들어야 돈을 버는 구조다.

정상인을 환자로 만들지 못하면 예방하는 약을 먹이면 된다.

튼튼한 잇몸을 만들고, 혈액을 맑게 만드는 뭐 이런 식이다.

천문학적인 연구, 개발비 대비 이익이 나지 않는 것

또한 희귀질환 치료제의 개발을 제약회사에서 망설이는 이유가 된다.

경제논리에 휘둘리지 않는 분야를 찾기 힘든 세상이다.

누군가 건강을 빌미로 불안을 조장한 후 무엇인가 권한다면

그 기저에 깔린 불순한 상업적 의도를 잘 판단하여야 한다.

 

 

돌이켜보면 필자의 인생은 혈압약을 권유받기 전과

그 후로 나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약을 거부하고 병원을 뛰쳐나온 후 한동안은

나 자신이 고립무원에 내동댕이쳐진 기분이었다.

주위에선 걱정섞인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같이 술을 마시던 지인은 의사가 주는 약을 먹으면

기존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는 어리석고 안이한 권유를 내게 하기도 했다.

약을 만병통치의 수단으로 보는 시선이 팽배한 상황에서

필자에게 생활습관 개선을 조언해주는 이는 그리 많지 않았다.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금주와 적당한 운동뿐이었다.

금주와 더불어 밤 늦게 먹는 일이 없어지자 체중이 눈에 띄게 감소하기 시작했다.

80kg을 넘나들던 체중이 60kg 후반이 되자 많은 변화가 몸에 찾아왔다.

지하철 계단을 오를 때 마치 내 몸의 반만 가지고 올라가는 느낌과 더불어

혈압계의 눈금이 내려가기 시작했다.

혈관을 압박하던 체지방을 덜어내자 혈행이 좋아진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금주 후 7년이 지난 지금 필자의 혈압은 지극히 정상적이다.

혈압약을 거부한 채 형광등을 갈다

불의의 사고를 당한 사람의 예를 필자에게 들려준 의사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필자는 형광등을 갈아가며 잘 살아가고 있다고 말이다.
박창희 교수 .

<저작권자 © 미디어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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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로 우리의 건강을 가름할 수 있나?

박창희 교수

 

 

[미디어파인=박창희의 건강한 삶을 위해]

철학에서 신의 존재를 논할 때 흔히 인용하는 것이 파스칼 내기(pascal's Wager)다.

신의 존재를 믿고, 그 믿음이 맞아 구원을 받게 되면 엄청난 이득이 있지만,

설령 그렇지 못할지라도 잃는 것은 많지 않으니 일단 믿고 보자는 논리다.

시쳇말로 밑져야 본전이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우리가 병원, 의사 또는 의약품을 신처럼 믿고 기대어 사는 것은 어떨까.

파스칼 내기처럼 안이하게 생각해선 안 된다.

현재의 의료 수준을 기준으로 살펴보면 득보다 실이 훨씬 많다.

현재 우리의 건강을 가늠하는 지표는 수치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재고 죽어가는 순간까지 재다가,

죽고 나서 마지막으로 또 잰다.

엉덩이를 맞고 세상에 나온 순간엔 몸무게와 키를 재고

죽어갈 땐 힘없이 떨어지는 심박 수를,

죽어서는 입어야 할 수의와 들어가야 할 관의 크기를 잰다.

모든 것은 수치화되어 우리의 눈에 보이고

우리는 거기에 환호하고 때론 절망하며 살아간다.

예를 들어 국가 시험에 수치(數値)의 뜻을 묻는 주관식 문제가 나왔다 치자.

“계산(셈)하여 얻은 값”이라 썼다면 백 점이다.

만약 필자가 “우리의 건강을 가름하는 척도로서 높아지거나 낮아졌을 때

우리를 안심 또는 걱정스럽게 만드는 것”이라고 썼다면 역시 백점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백 점은 커녕 0점을 맞을 수도 있다.

 

 

현행 우리의 건강은 수치에 의해 규정되고 있으며,

우리는 의학의 힘을 빌리고 거기에 우리의 노력을 보태어

그 수치를 높이거나 낮추기 위해 몸부림치며 살고 있다.

보편타당한 근거는 따져 볼 겨를도, 작은 의문도 갖지 않고

우리는 누군가 만든 규정과 기준에 의해 살아가고 있다.

본시 바른 것인지, 그렇게 믿고 살다 보니

부정하기 어려운 진실이 된 건지, 제대로 따지는 이는 많지 않다.

이러다 이거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 적은 없는가.

우선 건강을 챙긴다며 수시로 재보는 혈압과 혈압측정기에 대해 알아보자.

130-90(혹은 120-80)이면 정상,

그보다 일정 수준 낮거나 높으면

저혈압 또는 고혈압이라는 정도는 대부분 알고 있다.

수치 뒤에는 영문과를 나와도 제대로 뜻을 헤아리기 힘든

mmHg라는 영문이 붙어 있는데 밀리미터 에이치지,

또는 밀리미터 수은주라 읽는다.

주민센터나 보건소 등 공공장소에 가면

한구석에 전자식 혈압계가 오롯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는 상대와 한번 붙어 보자는 듯

외투를 벗고 주먹을 말아쥔 후 원통 안에 손을 밀어 넣는다.

안정적인 숫자를 얻기 위해 숨을 고르지만,

왠지 그 기계와 마주하면 이내 가슴이 콩콩 뛴다.

시작 버튼을 누르면 팔꿈치 위에 있는 압박대,

일명 커프가 사정없이 팔뚝을 조이는데

어느 시점에 이르러 조임을 풀고 결과를 수치로 알려준다.

 


숫자가 높게 나오면 불안한 마음에 재측정을 한다.

수치가 높으면 몸도 찌뿌둥하고, 적당하면 심신까지 맑아지는 듯하다.

한낱 기계가 내보이는 숫자 앞에 우리의 희비가 엇갈린다는 사실이 우습다.

생김새, 유전자 등 저마다 다른 인간의 신체적 특성이

기계적 수치 앞에 고려되지 않는 현실은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흰 가운을 입고 청진기를 목에 두른 채 팔짱을 낀 의사의 모습은

내가 너희들의 몸과 마음을 책임지겠다는 듯 당당해 보인다.

거의 신과 동격인 흰색 가운 앞에 혈압이 높아지는 일명 백의 고혈압도 있다.

다분히 심리적이라 대부분 위험성이 높지 않아

치료가 불필요하다 하면서 그 앞에 살포시 달리는 단서가 있다.

한번 높아지면 올라간 수치만큼 다시 높아지기 쉬워

고혈압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있으니 혈압 상태를 예의주시해야 한다고 말이다.

현대 의학이 의료시스템의 잣대를 들이대면

세상에 건강한 이는 아무도 없고 그저 환자와 예비환자만 있을 뿐이다.

다가오지 않을 미래에 대해 지대한 걱정을 하는 것이

건강에 미리 대비하는 지혜로운 삶일까.

다음 호에 혈압을 재는 기계의 불분명한 정체부터 밝혀보자.


박창희 교수 .

<저작권자 © 미디어파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