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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유산 답사

自由人 2017. 6. 26. 06:20


세계유산 답사

 조선 제6대 단종대왕비

정순왕후 송씨 사릉(思陵) 제향




지난 2009년 조선왕릉 40기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이는 519년을 유지한 왕조의 27명 왕과 왕비 및

사후 추존된 왕과 왕비의 무덤을 망라한 것으로,


한 왕조의 무덤이 이렇게 온전하게 보존된 사례는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들다는 것이며,


 특히 현재까지도 예(禮)와 정성으로 극진하게 봉향이

이루어지고 있음이 높이 평가되었다고 한다.

본래 역대 제왕과 왕후에 대한 기신제는

  경복궁 문소전에서 행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문소전이 불타버린 후,

능에서 기신제를 봉행했으며,


일제강점기를 거쳐 광복되기까지 지속하여 오던

  조선왕릉 제향은 광복 후 혼란기와 6·25 전쟁으로 말미암아

 십여 년을 유지하지 못하였으며

1956년 사단법인 전주이씨대동종약원이 조직되고

제향을 복원하여

1957년 5월 24일(음) 태조고황제의 건원릉에서

 해방 후 첫 제향을 봉행한 이래

현재까지 각지에 산재한 조선왕릉의 제향이

  조직적,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지난 5월 20일 단종비 정순왕후 송씨의 496주기 기신제가

남양주 사릉(思陵)에서 엄숙히 봉행되었다.


정순왕후(定順王后) 송씨 (1440~1521)

단종비 정순왕후 송씨는 조선왕조 최초로 왕에게 시집온 여자다.

 대부분이 대군이나 세자 때 결혼하여 군부인이나 세자빈이었다가

남편이 즉위함에 따라 왕비가 되던 전례와 달리,

정순왕후는 시아버지 문종이 승하 후 상중(喪中)임에도

숙부인 수양대군(세조)의 강권에 따라 혼례를 올림으로써

조선왕조 최초로 현직 임금에게 시집온 여자가 되었다.

1454년 혼례를 올릴 때 단종은 겨우 14살,

왕후는 15살이었으며 한 해 전인

1453년 계유정난으로 실권을 장악한

 수양대군의 위세 아래 어린 임금은 사실상 허수아비였다.


 1455년 숙부 수양에게 왕위를 양위하고 상왕으로,

정순왕후는 의덕왕대비(懿德王大妃)에

봉해져 유폐생활을 하게 된다.


1456년 성삼문의 난으로 불리는 사육신의 단종복위계획이

사전에 발각되어 관련 신하들은 혹독한 고문 후 처형되었으며,

이듬해 단종은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강원도 영월로 유배되었고

정순왕후는 군부인으로 격하된 후 동대문 밖 동망봉

부근에서 어렵게 살아가는 처지가 되었다.

3년 간의 애틋한 결혼생활을 강제로 끝낸 부부는

이후 영영 만날 수 없었다.

그해 시월 마침내 영월의 단종이 사사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정순왕후가 동쪽이 바라보이는 동망봉에 올라 매일 통곡을 할 때

동네 아낙들이 함께 통곡하는 동정곡이 온 마을에 울려 퍼졌다.


당시의 동망봉우리나 훗날 영조가 세웠다는 비석과 동망정 정자 등은

 일제강점기때 일대가 채석장으로 개발하면서 훼손되고

 지형이 바뀌어 지금은 찾아볼 수가 없고 근래 새롭게 세운

정자와 표석이 그때 일을 짐작게 할 뿐이다.

그후 정순왕후는 64년을 더 살며 자신을 왕비로 간택했다가

결국엔 폐비로 만들고,

남편에게 사약을 내린 시숙부 세조보다는 53년을 더 살았다.


또 세조의 후손이며 시사촌인 덕종과 예종, 시조카 성종,

 시손 연산군의 죽음까지 지켜보고 나서야 그녀의 한 많은 생을 마감했다.


승하 후에는 단종의 누이 경혜공주가 출가한 해주정씨 묘역에

 대군부인의 예로 장례를 치렀으며 숙종 24년(1698)에 복위되어

 사릉(思陵)이라 칭하니 사후 177년 만에

신원(伸寃 : 가슴에 맺힌 한을 풀어 버림)이 되었던 것이다.


496주기 기신제(忌晨祭)

이렇듯 정순왕후는 시누이 시댁인 해주 정씨 묘역에 묻히다 보니

기신제에는 전주 이씨는 물론 정순왕후 송씨의 문중인 여산 송씨와 함께

 해주 정씨 문중까지 함께 하게 됐다.

 

금년도 제향의 초헌관은 전주 이씨에서, 아헌관은 여산 송씨,

종헌관은 해주정씨에서 대표자들이 나와서 경건하게 지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기신제는 홍살문 안에서 향과 축츨 대축에게 전하는 전향축례(傳香祝禮)로 시작된다.


뒤이어 전 제관들이 각자의 자리에 서고 헌관과 재위자 모두가
 네 번 절하는 사배(四拜)가 이어진다.

다음은 면과 탕을 올리게 되는데 뒤이어 초헌, 아헌, 종헌의 순서로
작을 올리며 진행된다.

이날 초헌관은 장,사릉 봉향회 감사 이문철, 아헌관은 여산 송씨 문중의 송재수,

종헌관은 해주 정씨 문중의 정윤근 3인이 진행하였으며

전체적인 진행 홀기(笏記)는 한문이지만 한글로 다시 부연 설명하거나

때로는 관련 내용을 쉽게 알려줌으로써 어려운 한자 용어나

유교의식에 익숙지 않은 사람들도 현재 어떤 절차가 진행되고 있는지

 이해하기 쉽게 진행하였다.



종헌을 마치고 면과 탕의 뚜껑을 덮고 나면 제향이 끝나게 되는데
마지막 절차는 축문을 예감에서 불태우는 망료(望燎)인데
실제로 돌로 된 예감의 ?뚜껑을 열고 그 안에서 태우는 것이 아니라
그 근처에서 준비된 용기에서 태우고는 마친다.

태조 이성계의 부인 신덕왕후 강씨는 사후 300년이 지나서야 복위가 되고

정릉이라 불리게 되자 일대에 비를 뿌려 이를 두고

후세 사람들이 세원지우(洗?之雨 - 원을 씻어주는 비)라고 불렀다.


정순왕후 송씨는 눈물도 말랐는지 사후 177년 만에 복위되고

 평생을 단종을 그리워했다 하여 사릉(思陵)이라 불리게 된 후

이렇게 올려지는 기신제인데 빗방울 하나 없이 하늘은 푸르고 맑다.

이날 기신제는 문중 인사들과 지역 유지 및 관계기관은

물론 지역주민과 답사단체 회원들도 참여하여 많은 인원으로 성황을 이루었다.

주최 측에서는 준비한 식사와 후식은 물론 지원하는 일손이

모자란다는 이야기를 듣고보니 이제는 이러한 왕릉 제향에도

 많은 관심과 참여가 보태어지며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와

전통을 아끼고 사랑하는 현장의 소식을 전할 수 있어 자랑스럽다.


사릉(思陵) 주변의 가볼 만한 곳

남양주는 서울과 가깝고 도로나 철도가 잘 되어 있어 찾아가기에 쉬운 곳이다.

사릉까지는 전철로 30분 남짓이면 도착할 수 있으며

 정순왕후를 참배한 후 근처에 있는 광해군 묘나, 친형 임해군과 생모 공빈 김씨의 성묘,

그리고 효종의 후궁 안빈 이씨의 묘까지 불과 2Km 반경 안에 모여 있어

반나절이면 충분히 둘러볼 수 있다.


고종과 순종이 묻힌 홍유릉까지 포함하면 하루 나들이로 충분하다.



인조반정으로 쫓겨난 광해군의 묘. 왕릉 40기에 포함되지 않았으며,
영락교회 공원묘지 안에 외롭게 모셔져 있다.
평소 출입할 수 없는 통제구역으로 사전에
사릉관리사무소에 출입을 신청하면 답사할 수 있다.


동생 광해에게 왕위를 내주고 유배지를 전전하다 죽임을 당한 친형 임해군의 묘.
광해군 묘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데 길 안내 표석은 있으나
 막상 산길로 들어서는 입구가 식별하기 어렵다.
 보조 안내간판 설치가 절실하다.


임해군과 광해군의 생모 공빈 김씨의 성묘(成墓).
광해군이 즉위 후 성릉(成陵)이라 부르며 왕릉 규모로 석물을 세웠지만,
  광해군이 쫓겨난 후 다시 성묘로 강등되었으며,
인조는 격에 맞지 않는 석물을 허물라고 했다는데 지금도 그대로 남아있어
왕릉급 묘로 꼽히는 곳이다.
쫓겨난 광해군이 어머니 발치에라도 묻어 달라 해서
 가까운 곳에 묻히게 되었다고 한다.


또 한 곳은 효종의 후궁 안빈 이씨의 묘.
청나라에 항복 후 잡혀간 봉림대군의 첩이었다가
 소현세자의 죽음으로 봉림대군이 왕위에 오르자 숙의를 거쳐
 귀인, 안빈까지 지위가 승격되었는데 심양에서 8년간 남자 옷을 입고
 정성껏 효종의 시중을 들어 그 충성과 헌신을 인정받았다고 한다.

정순왕후의 기신제를 맞아 사릉(思陵)을 참배하고

쫓겨난 임금 광해군과 동생에게 죽임을 당한 친형 임해군,

그리고 그 두 사람의 생모 공빈묘를 둘러보고 끝으로

 효종의 안빈묘까지 둘러본 어떤 이는

'로열패밀리나 왕의 처첩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영욕을 함께 하는 것이고 때로는 참척의 고통을 껴안고

일생을 마치기도 하는 것이니

우리처럼 평범한 필부필부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 삶인지 깊이 깨닫게 되었다'고 소감을 토하는데

과연 고개가 끄덕여지는 말이다.


자료제공=남양주 시민 문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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