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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값진 선물
부부의 문제는 사실상 그들만의 것이 아닙니다. 문제의 근원을 거슬러 오르면 결국엔 부부들 당사자가 결혼도 하기 이전에 이미 각자의
부모와의 관계에 그 문제의 뿌리를 두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자녀의 문제 또한 개별적인 것이 아니라 결국 부부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모든 개인의 문제는 개별적인 것이 아니며, 가족 전체가 그 문제의 원인인 셈입니다.
즉 각 개인에게 나타난 문제는 가족 전체의 결과로 나타난 것이며, 결국 가족이 환자인 셈입니다.
가족문제의 핵심은 무엇보다도 마음과 마음이 가장 잘 통해야 할 가족 구성원 간에 서로의 깊은 마음을 알아주지 못하고 나눌 수도
없다는 데 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 모두가 “들음의 능력”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가슴 아픈 상처도 누군가 그 고통의
경험을 깊이 들어주고 나눠주기만 한다면 거기엔 반드시 치유가 일어납니다. 사랑하는 가족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값진 선물이 있다면,
그것은 가족의 말을 “그냥 들어주는 일”입니다.
내가 상담했던 어떤 분은 남편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려고 할 때, 자신이 할 말을 다하지 못한 채 도리어 남편의 얘기만 듣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불평했습니다. 대개의 경우 고통의 근본적인 원인은 그 사람에게 일어난 고통 그 자체보다도 그 고통을 누군가와
나누지 못했다는 데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얘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고통이 격감됐다고 고백합니다.
단지 들어주기만 했는데도 눈물을 터뜨리는 사람들을 종종 대하게 됩니다. 나는 울고 있는 사람들에게 티슈를 건네주는 일조차,
그 사람의 아픔과 고통이 터져 나오는 중요한 순간을 방해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후로는, 그저 듣는 것에만 더욱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울고 싶은 만큼 다 울고 난 뒤에 그 사람은 거기에 자신과 함께 있었던 나를 발견합니다.
매우 쉽게 느껴질지도 모를 이 일을 배우는 것이 나에겐 쉽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내가 배워온 대부분의 지식들과는 반대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한 때 나는 그냥 듣기만 하는 사람들은, 말하는데 자신이 없거나 대답할 말을 몰라서 그러는 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인내하고 침묵하며 그냥 들어주는 일은 청산유수의 말보다 훨씬 치유하는 힘이 클 뿐만 아니라 서로를 깊이 연결시켜
줍니다. 이제부터 나의 말을 하기 보다는 가족의 말을 그냥 들어주는 일부터 실천해 봅시다.
< 김 창 대 임마누엘 신부님 / 부산교구 원로사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