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林寅植의 6.25 전란 기록
1950년 6월25일 새벽, 한국전쟁이 터지자마자
임인식(林寅植)(1920~1998) 중위는
전선으로 달려갔다. 국방부는 한국전쟁 발발 직후
국방부 소속 정훈국에 사진대(隊)를 긴급 편성해
전쟁 상황을 기록하는 임무를 맡겼고, 육사 8기였던 임 중위는
사진대 대장으로 임명돼 총 대신 카메라를 들고
참혹하고 처절했던 한국전쟁 현장을 촬영했다..
임인식(1920~1998)씨는 평북 정주 출생으로
1949년 육군사관학교(8기)를 졸업했다.
1950년부터 1952년 육군 대위로 예편하기까지
국방부 정훈국 사진대 대장으로
6.25전쟁에 종군기자로 복무하였다.
5.16 이후 은거하다 1990년 미국으로 이민 후 1998년 귀국해서
서울에서 타계했다
임인식, 고향집의 추수, 평북 정주, 1937년
임인식, 추수하고 웃음 짓는 농부, 평북 정주, 1944년
'가회동 초가집에서 촬영한 가족사진'(임인식·1948)
옛 제주 도청 앞 양떼들. 201 x 248mm, 1948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 기념식 이승만 대통령과 맥아더 원수
임인식 사진대장과 처칠 영국 총리의 아들 랜돌프 처칠 기자 1950. 8.
윈스턴 처칠 총리의 아들 랜돌프 처칠은 영국군 소속 종군기자로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1950년 8월 낙동강 왜관 부근 다부동에서
임인식 종군사진대장(왼쪽)과 처칠이 함께 찍은 사진.
한강 피난행렬. 1950년 6월30일
폭파된 한강철교 옆에 만든 임시 부교를 건너는 피난민.
피난민들은 소에 짐을 싣고 가다 식량이 떨어지면 잡아먹기도 했다.
한강철교 폭파 장면. 전쟁 발발 사흘 뒤인 1950년 6월28일
북한군 진격을 막기 위해 한강인도교와 한강철교가 폭파됐다.
영등포 쪽에서 촬영.
1950년 가을, 국군 위문공연을 바라보는 군인들
끔찍한 전쟁 속에서도 군인들의 사기를 높이고 마음을 달래주는
다양한 공연들이 이어졌다. 많은 문화예술인들이 군예대를 조직해
트럭과 천막을 무대 삼아 재담과 노래로 공연을 펼쳤다.
초가집 위에 올라가 위문공연을 보는 군인들의 모습.
지붕이 위태로워 보일 정도다
학도의용군
학도의용군 지원을 독려하기 위해 서울 성동공업중학교 자치회가
내건 펼침 막 앞에서 어린 학생이 입대를 다짐하고 있다.
경북 안강지구 학도병이 전선으로 출발하고 있다. 1950. 8.
이승만 대통령 평양 시민환영대회. 평양공설운동장. 1950. 10.
서울시청 앞 의용군 환송 행사
서울시청 광장에서 열린 입대축하식 모습.
왼쪽 뒤편으로 환구단 건물이 보인다.
무기를 나르는 민간 노무자들. 1950. 8.
전선으로 소송되는 무기와 물자를 나르고 있다
부녀자들이 장병들을 위한 주먹밥을 만들고 있다. 1950.
1950년 9월 함상에서 작전회의 중인 국군 해병대
임인식, 서울탈환작전. 국군과 해병대가 중앙청 입성하는 모습,
1950년 9월 28일
사진가 임인식이 서울 수복 작전이 실시되는 동안 폐허가 된
숭례문 주변을 찍은 모습. 1950년.
임인식, 전쟁으로 폐허가 된 서울 시청 앞, 1950년 10월
사진가 임인식이 찍은 폐허가 된 서울 모습.
1950년 10월. 6.25로 소실된 보신각종
맥아더 장군과 정일권 대령
1950년 10월 21일 평양시민 환영대회 단상에 나타난 이승만 대통령.
국군위문공연. 1950.10.
부산 유엔군 환영 군악 연주 .1950. 10.
임인식, 1.4후퇴. 1951. 청천강을 건너는 피난민들,
전쟁의 상흔은 광화문에도 남아(1951년)
조선총독부 신축 당시인 1925년 경복궁 동쪽으로 이전되어
궁의 정문으로서의 위상을 상실한 광화문은
한국전쟁 당시 문루가 불에 타 육축만 남았다.
전쟁의 포화로 파괴된 수원화성 장안문. 1951.
지금의 장안문과 비교해보면 전쟁 이후 얼마나 눈부신 발전을 이뤘는지
알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전쟁의 상처를 잊지 않기 위해
이 모습을 보존하는 것도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1951년 중) 임인식
전쟁의 상흔은 광화문에도 남아(1953년 임인식 촬영)
서울 숭례문 앞 거리 풍경. 1953.
1950년대에 화신백화점 앞 풍경과 서울 종로 거리를 운행하는 전차
1952년 정전회담 취재 중 북한군 병사와 환담을 나누고 있는
문제안 종군작가와 임인식 .
경교장. 1951
문산 휴전회담 천막에서 유엔 측 회담 대표
백선엽 소장이 걸어 나오고 있다. 1953.4.21.
피난민 위한 공연. 1951. 7. 대전
백조가극단의 <낙화유정> 관람하는 군인들. 1951.
임인식, 청계천 수표교, 1953,
송환된 국군 포로 위문공연. 1953. 9.2.
문산에서 이화여중 무용 공연
1953년 6.25로 일부 파괴된 재동초등학교
한국전쟁으로 불타버린 재동초등학교 건물 앞 운동장에서, 1953년
한강철교 복원 기념 이승만대통령과 밴프리트 장군. 1953.
가회동 부근 삼청공원. 1953년.저 동그란 구조물은 정자다. 시멘트로 지은 현대식 정자인데,
전쟁의 흔적인지 중간중간 이빨이 빠진 듯 생채기가 있다.
1953년 인사동 찻집 입간판과 꼬마
임인식 가족. 가회동 자택. 1953.
서울 남대문시장 안 풍경과 인파.1953.
종로거리의 전차 . 1953
팔당 낙조와 나룻배. 팔당 낙조와 나룻배
임인식의 '한강의 얼음장사들' .1953.1.
1954년 한강에서 얼음 채취 후 휴식을 취하는
1954년 서울 뚝섬 일대 채소밭
전쟁이 끝난 뒤에도 파괴된 서울은 한동안 폐허지경이었다.
지금의 건국대 부근 1950년대 항공사진
이 사진은 사진작가인 고(故) 임인식씨가 1954년 경비행기를 타고
하늘에서 촬영한 가회동의 한옥 전경.
경복궁의 모습 . 1954. 임인식 촬영
1954년 하늘에서 본 경복궁
근정전 앞에 조선총독부 건물이 버티고 서 있다. 그 뒤로 경회루, 향원정 등이 보인다.경복궁 동쪽으로 사간동 삼청동 일대에 한옥이 빼곡하다
종로와 을지로를 운행하던 동대문 전차 차고. 1955.
1954년 용산 삼각지 로터리는 이랬다.주변의 공터는 전쟁중 포격으로 집이 사라졌기 때문,
6ㆍ25 전쟁 중 용산 일대에서 격전이 벌어졌다.
이후 삼각지에는 고가차도가 들어섰다가 최근 다시 대로로 바뀌었다.
왼쪽에 상명여고가 보인다.
사진작가 임인식(한국전 때 통역장교 복무)씨의
한국전 직후 민간인으로 최초로 찍은 항공사진.1954.
동대문 주변과 종로거리. 1955.
동대문 주변 종로 그리고 이대부속 병원
창덕궁과 종묘 1954.
맑은 청계천이 아래쪽에 보인다.
울창한 나무 사이로 종묘가 보인다. 1954
임인식, 청계천 5가, 1954년 8월 촬영(항공사진),
임인식 선생 집은 가회동이었다.
그 가회동 집에서 1954년 어느 날 점심을 먹고 있는
임인식 선생의 동생이다.
봉은사 일주문. 1950년대 초,
중앙선 철길, 174 x 276mm, 1955
1953년 청계천 범람으로 침수된 종로거리
1955년 겨울 청계천변 생활상 모습. 판자집 아래서 몸 보신하는 사람들
1955년 동대문 주변과 종로거리
아이와 한가로이 풀을 뜯는 소들.
24.5 x 20.1 cm, gelatin silver print, 1955
1955년 광복10주년을 기념해 창경궁에서 열린 산업박람회
1955년 광복10주년을 기념해 창경궁에서 열린 산업박람회
서울 종로. 1955.
1956년 가회동과 제동 사이의 도로를 마차를 이용해 포장하는 모습
임인식, 제주 성읍마을 아이들, 1957년
1957년 성읍마을 고목과 아이. 임인식 사진가
임인식 '남한산성 동문'(1958년)
남한산성 이승만박사 송수탑-임인식 1958
1959년의 남한산성 모습. 임인식 씨가 찍은 사진임인식의 1950년대 한강변 사진
북한산 비보봉 정상의 신라 진흥왕 순수비. 1961.
북한산에 있었던 신라 진흥왕 순수비입니다.
지금은 보존을 위해 경복궁에 잠시 옮겨 놓았다가 국립 박물관에 보관 중
창경원 춘당지. 1961.
한국전쟁 최초의 종군사진가 임인식 중위
귀중한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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