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을 수 있는 지금 많이 걸어라
사람들은 아파서 병원에 간다. 물론 아기를 낳으러 산부인과에 가는 산모도 있고, 우울증 치료를 위해 정신건강의학과에 가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병원 환자는 어딘가가 무척 아프다.
척추 관절 병원은 유독 더 심하다. 뼈마디가 아파서 걷을 수가 없거나, 허리가 끊어질 듯이 아파서 병원을 찾는다. 또는 엘보가 와서 팔꿈치가 욱신거리거나 오십견 때문에 옷도 못 입을 정도로 아프다고 한다. 다들 아프다.
그래서 환자들은 "아프지 않게 해달라"고 요구한다. 아프지 않은 것 외에 척추 관절 환자들에게는 또 다른 소망이 있다. 바로 ‘잘 걷는 것’이다. 세상에 걷는 것만큼 쉬운 일이 없는데, 고작 걷는 게 소망이라는 무슨 말인가?
- 오랜 시간 불안정한 자세로 근무하는 직장인 중 목디스크를 호소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조선일보DB
인간의 본능을 제외하고, 태어나서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이 말하기와 걷기다. 대개 첫돌을 전후해서 '엄마', '아빠', '맘마' 등의 말을 배우면서 걸음마를 시작한다. 워낙 아기 때 일찍 시작하다보니 걷기는 본능인지 배워서 익힌 것인지 헷갈릴 때도 많다. 인간은 태어나서 1년쯤 지나서 걸음마를 배우지만, 많은 동물들은 태어나자마자 바로 걷기 때문에 걷기는 동물의 본능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여하튼 오른발 다음에 왼발을 내딛겠다고 생각하면서 걷는 경우란 군대에서 제식훈련을 받는 병사들에게나 해당할 뿐, 대부분의 사람은 무의식 속에서 걷는다.
그런데 이처럼 쉬운(?) 걷기가 어려운 순간이 온다. 대표적인 원인이 바로 퇴행성관절염이다. 그밖에도 골절이나 뇌졸중이나 파킨슨병 등 걷기에 장애를 초래하는 질병들이 꽤 많다. 밥 먹기나 모국어로 말하기와 같이 본능에 가까운 걷는 동작을 제대로 할 수 없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사람이 동물인 이유는 걸을 수 있기 때문
사람은 동물(動物)이다. 생물을 동물과 식물로 나눌 때 가장 큰 차이는 '이동' 여부다. 즉 동물은 식물과 달리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닐 수 있다. 날든, 헤엄치든, 기어가든, 걸어가든 여하튼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갈 수 있다. 육상 동물인 사람은 걸어서 이동한다. 그런데 만약 걷지 못하면 극단적으로 말해 동물인 사람이 식물이 된다. 식물이 아닌 사람이 식물처럼 이동하지 못하고 한 곳에 머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결론부터 말하면 '건강에 나쁜 모든 일‘이 일어난다. 수명이 짧아지는 것은 당연지사다. 이를 뒷받침하는 의학 연구 사례는 워낙 많아서 이제는 상식처럼 됐다. 수많은 연구결과들은 현대인들에게 많이 발생하는 암, 심혈관질환, 대사증후군 등의 중요한 원인이 적게 걷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우울증과 같은 정신건강의학적 질환들과 걷기의 관계를 다룬 연구들도 많이 나오고 있다. 이들 의학이 지적하는 가장 핵심적인 내용을 종합하면 현대인들의 걷는 양은 너무 적은 반면, 먹는 양은 너무 많다. 이 불균형이 많은 건강 이상의 원인이 되고 있다.
전형적인 두 사례가 미국의 '피마 인디언'과 '아미시 공동체'이다. 미국 애리조나 지역에 사는 피마(Pima) 인디언들은 수천 년 간 척박한 환경 속에서 살다가 인디언 보호정책 시행으로 1950년대부터 고칼리로리 음식을 먹을 수 있었던 반면, 일을 하지 않아도 된 탓에 운동량이 확 줄었다. 그로부터 50여년 뒤에 피마인디언은 비만율 80%, 당뇨병 유병률 60%라는 끔찍한 상황으로 변해, 역사상 단기간에 가장 건강이 나빠진 사례의 하나로 꼽힌다.
반면, 미국 펜실베니아주 등에 흩어져 사는 보수적인 프로테스탄트 교파 사람들인 '아미시(Amish)'는 종교적인 이유로 아직도 18세기의 검은 양복과 모자를 고집하고 자동차 대신 마차를 이용하며 살고 있다. 이들은 하루 10시간 이상 노동하며, 사실상 현대 문명과 담을 쌓고 살고 있다. 연구에 따르면 아미시의 하루 평균 걸음걸이는 1만425보로 미국 평균의 4~5배에 이르렀다. 아미시의 당뇨병 유병률은 불과 2~3%에 불과하다.
이 두 사례는 당뇨병 연구에서 흔히 인용되지만, 향후 암, 관절염, 심혈관질환 등 다른 질환에 대한 연구가 추가로 진행되면 당뇨병과 비슷한 양상을 보일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정한다. 많이 먹고 적게 움직이는 것이 건강에 어떤 악영향을 주는 지 피마인디언과 아미시공동체는 단적으로 보여준다. '적게 움직인다'는 것은 '적게 걷는다'와 같은 의미로 봐도 된다. 사람이 움직인다는 것의 기본이 걷는 동작이기 때문이다.
서울 양재천 주변 직장인들이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산책하는 모습 /전기병 기자
새해 건강 계획의 기본은 많이 걷는 것
100세 시대를 맞아 건강은 많은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관심사가 됐다. 운동, 건강기능식품, 보양식 등 건강을 위한 특별한 노력을 하는 사람들도 무척 많아졌다.
주말에 도시 가까운 산에 가보면 정말 많은 사람들이 산행을 하고, 자전거를 즐기는 사람도 많다. 문제는 운동을 위해 따로 시간을 내기 힘든 현대인들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먹고 사는 데 바빠서 운동은 엄두도 못 낸다는 사람들도 많다.
나는 이들에게 가장 중요하면서도, 마음먹기에 따라서 가장 쉬운 방법인
걷기부터 시작하라고 권하고 싶다.
현대 도시 직장인이 승용차로 출퇴근할 경우 하루 걸음걸이 양이 2000~3000보에 불과하다. 젊을 때는 이 정도만 걸어도 당장 건강에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 생활이 10년, 20년 계속되면 바로 우리도 피마인디언처럼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심한 당뇨병 합병증 중의 하나가 '당뇨발'인데, 발가락부터 썩어 들어가기 때문에 발목을 자르는 수술을 받아야 할 수도 있다. 이는 정형외과에서 꽤나 흔한 수술 중의 하나이다. 당뇨발 때문에 발목을 자르고 나면 의족을 쓰지 않고는 걸을 수 없다.
아직 젊고 건강하다고 안심해서는 안된다. 얼마 전 건강보험공단이 발표한 '2012년 건강검진통계연보'에 따르면 특히 30대 남성의 신체 활동 실천율은 5.7%로 전 연령대, 성별을 통틀어 최하를 기록했다. 반면 비만율(41.1%)과 흡연율(52.8%)은 가장 높았다. 건강에 빨간불이 들어온 30대 남성들에게 걷기가 더 많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인구 고령화로 퇴행성관절염 환자 숫자도 계속 늘고 있다. 퇴행성관절염은 걷기 능력을 치명적으로 떨어뜨린다. 필자는 지난 칼럼에서 무릎을 감싸고 있는 활액막 속의 활액을 통해 무릎 연골에 영양이 공급된다고 설명한 바 있다. 그런데 걸을 때 활액의 품질이 더 좋아져서 영양공급이 원활하게 이뤄진다. 올바른 걷기는 퇴행성 관절염 예방과 치료에 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두자. 많이 걸어야 무릎이 더 건강해지고, 온 몸의 건강도 더 좋아지도록 설계된 인간의 몸은 신비하다.
2014년 새해 건강 계획의 제1장을 2013년보다 더 많이 걷는 것으로 세웠으면 한다. 지하철을 이용할 때 한 두 정거장 앞에서 내려서 걸어가도 좋고, 일주일에 하루~이틀이라도 승용차를 놔두고 걸어서 출퇴근해도 좋다. 아니면 가족들과 주말 나들이를 할 때 꼭 30분~1시간쯤 걸을 수 있는 코스를 넣는 것도 권할만하다. 잘 걸을 수 있는 지금 많이 걸어야, 나이 먹어서도 오래 오래 걸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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