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풍경

1960년대 새마을 운동때의 모습

自由人 2017. 2. 25. 07:44




1960년대 새마을 운동때의 모습

sang joo_chung | 2017.02.24 17:17 목록 크게

 


새마을 운동 이전, 추억의 우리들 모습
 

 

 

 

 

두메산골 추운 겨울을 나기위해 월동 준비를 해놓은

장작더미 앞의 세모자입니다

초라한 모습과 천진 난만한 표 정이 가슴을 찡하게 만듭니다

 

 

  굴피 나무 겁질로 지붕을 덮어놓은 너와 라는 지붕이지요

 

 

겨우살이를 위해 준비해둔 옥수수와 산골의 가정의 풍경입니다

옥수수 죽이나 감자등으로 연명하며 겨울 나 기를 했지요

 

 

아이를 업고 김을 메는 우리들 어머님의 모 습입니다

 

 

학교를 마치고 지나가는 차를 얻어 타기위해

손을 흔들고 있습니다

 

 

  최고의 놀이 기구였지요.부모님들이 안계시면

몰래 끌고 나와서

온 동네 친구들 태우고, 때론 굴러서 많이들 다치고...

떨어진 바지 시린손 그래도 행복했습니다.

 

 

그나마 도심에서는 만화방이 있어서 산골보다는 좋았지요.

만화방에서 책보는데 1원주면 6권정도...

 

 

  생계를 위해 학교 다녀와서 껌팔이도 하고....

 

 

  신문팔이,신문배달 참으로 어렵게들 사셨습니다.

 

 

  어촌의 아이들이 부모님의 일손을 도와 어포를 말리 중입 니다.

 

 

생활은 어려워도 꿈과 희망이 넘첬던 시절이었습니다.

텃밭의 짚더미는 추위도 녹여주고 놀이터로 활용되고....

 

 

  교 다녀오면 의례 부모님 일손을 돕고 밤이돼야

숙제를 할 수 있었습니다

가물 가물한 호롱불 밑에서

꾸벅 꾸벅 졸면서 숙제하다.

머리 카락 많이들 태웠었 지요

연필심 마져도 품질이 좋지않아 침을

발라 두어자 쓰고 또 침바르고...

 

 

  암닭이 알을 놓기가 바쁘게 책보허리 에 메고

따듯한 계란을 들고 학교로 내달렸지요.

문방구에 가서 계란으로 공책이나 연필등 학용품으로

물물 교환했답니다. 뛰어가다 엎어져

계란은 깨지고 눈물 콧물 울기도 많이 울었지요,

근방 낳은 계란에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

 

 

  학교 다녀와선 어김없이 지게지고 밭으로,

산으로 땔감을 구하러 가곤 했지요

 

 

  가축들도 거두고, 한겨울에 고무신고 신발이 꽁꽁

얼서서 발에 붙어 떨어지지도 않았답니다.

그때는 동상 안 걸린 아이들이 이상했지요

 

 

  설것이도를 하기 위해 빈그릇 솥가마등을 않고 동네

우물가로 설걷이를 하러 가는 모습입니다.

가마솥 뚜겅을 머리에 쓰고 가는 모습이

설걷이를 많이 해본 솜씨 같습 니다

 

 

  지게를 못지는 여자아이들은 나무를 묶어서 머리에 이고

산에서 내려오다많이도 굴르고 다치고......

 

 

 

  먹고 살기위해 학교 다녀오면 길거리로 구두딱이,

껌팔이,신문팔이 무엇이든 했답니다

 

 

  구두를 닦는 아이의 표정이 무척이나 고달퍼 보입니다

 

 

  어머니의 바쁜 일손을 돕고있읍니다.

요즘 머리에 물건 이고 다닐 수 있는

어린이들은 아마 없겠지요

 

 

  부모님들은 공사장이나 들에 나가고 어린들은 학교

다와서 동네의 잔 일거리들은 다 하였지요.

 

 

  곡괭이나 삽질도 잘했지요

 

 

  당시 정부에서 덩그러니 학교 교실 하 나 지어주면

나머지 모든 공사는 학생들 차지 였습니다.

돌을 이고 지고 학교 축대 쌓는 작업을 하고있네요 머리에

돌을이고 있는 어린이 모습.. 돌을 어깨에 맨 아이...

 

 

  배타고 나가 부모님 일손도 돕고.....

 

 

  소먹이로 가고...비록 힘들게 살았어도 국경일이면,

산골마을 독가에서도 꼭꼭 태극기 게양 했지요..

 

 

  초가집앞 텃밭에서 농사일을 돕고있네요

 

 

  한겨울 강아지를 않고 따라로운 햇볕을 쬐고있습니다..

강아지 안으면 온몸이 따듯했지요..

돌아가면서 않고,순서를 기다리는 두어린이 표정이...

 

 

 

  엄마가 세수시켜 줄때면 제인먼저 코풀어! 하시고 ..

따듯하게 물데워서 어린 동생들을 돌아가며 세수를 시키셨지요

 

 

  아파도 병원이 없어서, 너무 멀어서, 늘 집에는 아까징끼

(머큐롬)을 비취해두고 발라주시 곤했지요.

자식의 아픈 고통을 대신하듯 어머니의

표정이 너무도 안타갑게 보입니다

 

 

  이발관이 없어서, 돈이 없어서 동네 한두곳 이발기계

있는 집에가서 머리를 깍고 했지요,

부실한 기게로 머리털 뽑혀서 눈물은 줄줄.....

 

 

  간혹 사회 복지가들이 학교 찾아오시 어

사탕이나 먹을것을 전해주시고...

 

 

  아이를 등에 업고 갯벌에서 하루 종일 일하시곤

밤이면 아고고 허리야!

고통으로 잠못 이루시던 우리 어머님들 이셨습니다.

 

 

  수안보 어는 산골마을 학교입니다

 

 

  부모님들 일손이 모자라 등교길 이린이들은 스스로

조그만 나룻배를 타고 도강하는 모습입니다.

안전 사고도 많았었지요.

 

 

  학교 교실에서 공부하는 모습입니다

 

 

  책상 걸상 무척 정겹습니다 특별 활동 시간

주산부 (수판) 어린이들 입니다

 

 

  추억어린 풍금입니다, 음악 시간이지요 선생님이면

누구나 풍금을 다룰 수 있어야 했지요

 

 

  양말도 신지 않은 어린이, 무척 진지해 보입니다..

 

 

  비가 조금만와도 중간에 수업포기 잽 싸게

개울을 건너 집으로 내 달렸지요.

물이 불으면 건너지 못했고,빨리 집에가서

집안 비 설것이 해야지요.

모든게 공부보다 집안 일이 우선이었지요..

 

 

  여자는 코고무신 남자는 검정 고무신, 한겨울 양말이 없어

발이 시린 아이들은 신발에 짚을 넣고 신었었답니다.

 

 

  학교 안가는 날이면 어린이 애향단(동호회)이 골목도

쓸고 마을 어귀에 꽃길도 만들고

자기 마을 가꾸기를 했답니다

 

 

  빗자루는 요즘 보기 힘든 싸리나무로 만든 빗자루입니다

 

 

  학교주변 수목원도 만들고...참으로 꿈과

희망이 많았던 시절이었습니다

 

 

  주기적으로 고적지를 찾아 대청소 및 관리도 하곤 했지요

 

 

  널뛰기하는 여자 아이들 모습입니다. 가운데 한 아이가

올라가 앉아 중심을 잡고

누가 누가 높이뒤어 상대를 떨어트리나

껑충 껑 충~ 요즘 보기 힘든답니다.

 

 

  운동회가 열리는 날이면 온동네 어른 아이 할것 없이

모두의 대 잔치였습니다..

부모님들과 함께 뭉처서 힘 겨루기를 했지요

 

 

  뛰어가면서 사다리 통과 하기 무릅이 벗겨저서

피가 줄줄 흐르고...기마전으로 힘 겨루기도 하고....

 

 

  누가 누가 멀리뛰나 훨훨.....

 

 

  청군이겨라! 백군 이겨라! 목청것 소 리치고 나면

다음날은 모두가목이쉬어,ㅎㅎㅎ

지금의 운동회는 점심 시간지나면 끝이지만 당시는

하종일 온마을 잔치로 해가 질때까지 했지요

 

 

  학교마다 보통 공 두 개정도(배구공, 축구공)

최고의 놀이감 이었습니다.

눈을 감고 블로킹하는 어린이 모습이^^*

 

 

이렇게 열악한 환경속에서도 차범근,이회택 과같은

세계적인 스타들이 탄생 하셨습니다

 

 

  한창 태권도 붐이 일어 학교마다 가르 키는 모습입니다..

기마자세 태극1장이던가요..?

 

 

  무용연습 중인 여자 아이들입니다..특 별 활동 시간이면

언제나 책 걸상 뒤로 밀어 붙여놓고...

 

 

  길거리 포장마차 비슷한곳에 아이들 간식 많이 팔았지요.

불량 식품이 너무많아 늘 배앓이하고.....

 

 

 

  당시 1원부터 제일 큰돈 500원까지 입 니다..

 

위 자료에 당시 산촌과 시 골위주로 올린 사진이며..일부

어르신은 이 좋은 세상 구경도 못해 보시고

이미 타개하신 분도 계실겁니다. 어렵고 힘 들 시절에

조국 근대화에 앞장서서 가난을 물리치시고

풍요로움을 후손들에게 물려주신 당시의 어린이들...

참으로 고마운 분들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앞장서서 새마을 운동을 하신 덕분에

이런 가난한 생활에서 벗어나게 되었고

추억속에 묻히고 오늘이 된검니다.